일궈가꾸는 마음밭!

훔쳐 먹은 떡값!-풋풋한 인심....

마징거제트 2011. 7. 4. 10:27

 

훔쳐 먹은 떡값


겨울이었지만,

그날은 산행하기 참 좋은 날이었습니다.

한동안 무섭게 모라치던 눈보라가 그치고

하늘이 환하게 개었습니다.

겨우내 웅크리고 있어 굳어진 몸을 풀겸,

나는 친구에게 겨울산행을 제의했습니다.

친구는 나의 제의에 선뜻 응했고,

우리는 기분 좋게 산을 올랐습니다.


그런데 산 중턱쯤에 올랐을 때 갑자기 눈보라가 치기

시작했습니다.

세차게 내려치는 눈발에 우리는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저물고 인기척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지자 음산한 바람소리만 귓전을 맴돌았습니다.

추위와 배고픔은 우리를 차츰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한참 동안 길을 찾아 헤맨끝에.

눈보라 속에서 희미하게 빛이 새어나오는 외딴집을 발견하고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담배" 간판이 붙어 있는 것으로 보아 장사를 하는 집인 듯했습니다.

우리는 이곳에서라면 추위와 배고픔을 달랠 수 있겠다 싶어

찌그러진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주인장 계십니까?"

우리는 애타게 주인을 불러보았지만 그 어디에도

주인은 보이지 않았고, 오직 난로만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습니다.

매서운 추위에 허덕이던 우리는 염치 불구하고 난로를 애워쌌습니다.

그때 우리 눈에 들어온 것은 난로 위에서 모락모락 김을 피우고 있는 "찰떡"

이게 웬 떡이냐 싶었지만, 주인도 없는데 차마 손을 댈 수가 없어서 침만

꼴깍꼴각 삼키고 있었습니다.


한마디로 그림의 떡이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걸걸한 목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거참, 맛있게 구워졌네. 우리 하나씩 먹읍시다!"

뒤를 돌아보니 수염이 텁수룩한 영감님 한 분이 난로 쪽으로

다가 와서는 떡 하나를 덥석 집어 입에 넣는 것이었습니다.

"영감님, 이거 먹어도 되는 건가요?"

우리가 걱정을 하자 영감님은 떡을 씹으며 말씀

하셨습니다.

"누가 봅니까, 우리들뿐인데. 얼른들 드세요.

아, 고것 참 맛있네!"


그건 분명 같이 공모해서 떡을 훔쳐 먹자는 제안이었습니다.

우리는 아주 잠시 동안 고민했지만,

더이상 허기를 참을 수 없었습니다.

주인이 오면 돈을 내야겠다고 생각하고 떡을 게 눈 감추듯

먹어치웠습니다.

그런데 떡을 모두먹고 한참이 지나도 주인이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영감님, 혹시 이 근처에 사시나요?"

"이 근처에 안 살면, 이런 날 미쳤다고 길을 나서겠수?"


영감님은 우리의 질문이 시답지 않다는 듯,

시근둥하게 받아치고는 툭 내뱃듯 말씀하셧습니다.

"요기라도 하실라우? 라면이 있긴 한데."

순간, 이 영감님이 주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습니다.

"혹시, 영감님이 주인이신가요?"

"주인이 아니면 그런 걸 싱겁게 왜 묻겠오?"


우리는 그제야 우리와 함께 떡을 훔쳐 먹은 영감님이

공범도 주범도 아닌 바로 가게 주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는 너무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고,

영감님은 그런 우리를 바라보며 피식 웃으시고는 주방으로 가서

라면을 끓여주셨습니다.


라면은 그야말로 꿀맛이었습니다.

라면을 다 먹은 후 값을 치르려는데,

내심 아까 먹은 떡값이 걸렸습니다.

"영감님, 떡값은 얼만가요?"

"이런 딱한 사람들 봤나. 아니, 훔쳐 먹은 떡값을 내는 사람도 있나?

얼른떠날 차비나 하구려.

우리 할망구 오기 전에."


그말에 우리는 맛있게 먹은 라면과 찰떡이 완전히 소화될 만큼

정신없이 웃었습니다.

우리는 영감님의 도움울 받아 무사히 산길을 내려왔습니다.

그후로 나는 삶이 힘들거나 짜증스러워질 때,

작은 일에 아웅다웅할 때,

산길 외딴집에서 만난 털보영감님의 그 넉넉함과

느긋한 여유를 떠올립니다.


====행복한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