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일독립선언서의 이해와 다짐!-20200301의 딘상!
♥삼일독립선언서(三一獨立宣言書)♥
* 역사적 배경
일제에 의해 우리나라가 강제 병합된 뒤,
국내외에서 비밀리에 전개되고 있었던 항일 구국운동은
기회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가운데 미국 대통령 윌슨(Wilson, T.W)의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발표되자,
민족지도자들은 독립운동을 전개할 기회가 왔다라고 생각하여 이를 추구하려는 노력들이 나타났다
* 내용
1918년말부터 독립운동의 3대 원칙,
즉 대중화·일원화·비폭력 등을 주장해 온,
손병희(孫秉熙)·권동진(權東鎭)·오세창(吳世昌)·최린(崔麟) 등의
천도교 측 중진들은 독립운동의 실천 방법으로
독립선언서와 독립청원서·국권반환 요구서 등을 작성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거족적인 운동으로 확대하기 위해
기독교·불교·유림(儒林) 등 각 종교 단체를 망라하는 동시에
저명 인사들을 민족 대표로 내세우기로 합의하였다.
그래서 1919년 2월 상순, 대한제국의 고관을 지낸 김윤식(金允植)에게
독립선언서의 서명자가 되어줄 것을 권유하였으나,
그는 독립청원서를 내는 것은 찬성하지만, 선언서 발표에는
찬성하지 않는다 하여 거부 입장을 분명히 하였다.
그 밖에 박영효(朴泳孝)을 비롯한 저명한 인사들의 완강한 거부에,
한때 운동이 포기될 위기에 처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고종이 승하하였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배일 감정이 절정에 다다르게 되면서 다시금 활기를 띠게 되었다.
이들은 다시 종교 단체와 교섭을 벌였는데,
먼저 기독교 측의 이승훈(李昇薰)을 만나 천도교와 함께
독립운동에 합류할 것이라는 승낙을 얻어내는데 성공하였다.
한편, 불교 측과의 교섭은 최린이 담당하여 한용운(韓龍雲)에게 승낙을 얻어냄으로써
불교 측과의 제휴도 이루어졌다. 한용운은 또 유림측의 참가를 교섭했으나
실패하여 유림측의 합류는 포기하고 말았다.
이때 독립운동의 실천 방법을 두고 논란이 일어났다.
천도교 측이 내세웠던 청원서와 선언서를 동시에
발표하자는 의견에 대해 일부에서는 청원서만을 내고
선언서는 발표하지 말자는 의견 대립이 발생한 것이다.
그러나 최린은 “청원서나 건의서를 내는 것은 일본 정부에게 독립을 시켜달라고
청원한다든지 건의해보는 것이므로 민족 자결의 의미가 없다.
그러므로 국내적으로 전민족을 분기시키고, 국외적으로 전세계에 향하여
독립해야 하는 이유와 독립을 위하여 싸우겠다는 결의를 표명하는
중대한 선언이 되어야 한다.”고 강력히 주장하여,
결국 독립선언서를 발표하기로 결정되었다.
독립선언서의 작성자로 최린은 최남선(崔南善)을 추천하였다.
최남선은 독립운동가로서 전국에 이미 알려졌고,
서구적 교양과 재래의 학문을 모두 갖추고 있을 뿐만 아니라
문장력도 뛰어난 사람이므로, 최린은 “전민족의 의사를 표시할
독립선언서와 같은 중대한 글을 지을 사람은 그 밖에 없다”고 하였다.
또한 최남선 자기 자신이 “일생을 학자로 마칠 생각이라
독립운동의 표면에 나서지는 못하지만, 선언서는 작성하겠다.”고
함으로써 선언서의 작성 문제는 일단 그에게로 낙착되었다.
뒷날 한용운이 독립운동에 책임질 수 없는 사람이
선언서를 짓는 것은 옳지 않다고 주장하고 자신이 맡겠다고 나섰으나,
이미 선언서의 초고가 완성되어 손질이 끝난 뒤였다.
지금 전하는 독립선언서 끝에 있는 공약 3장(公約三章)은
후에 한용운이 추가한 것이라고도 한다.
이렇게 하여 작성된 독립선언서는
천도교측 15인, 기독교측 16인, 불교측 2인 등
33인이 민족 대표로 서명하였다.
독립선언서의 원고는 오세창(吳世昌)을 통해 천도교에서 경영하는
보성사(普成社) 인쇄소 사장 이종일(李鍾一)에게 전달되었다.
이종일은 공장 감독 김홍규(金弘奎)와 함께 2만 1,000매를 인쇄하여
경운동(慶雲洞) 자기 집으로 운반하였다.
선언서는 28일부터 전국 각지로 전달·배포되면서
거족적인 3·1운동의 전개에 있어 결정적인 구실을 담당하게 되었다.
* 의의와 평가
1,762字로 된 독립선언서에는 조국의 독립을 선언하는 내용과
인도주의에 입각한 비폭력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민족자결에 의한
자주 독립의 전개 방법을 제시하고 있어,
오늘날 전해오는 국내외 각국의 독립선언과 비교해보아도
아무 손색이 없는 명문으로 평가되고 있다.
* 참고 : 3·1독립선언서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학중앙연구원
♥三一獨立宣言書(독립선언서) 전문♥
吾等(오등)은 玆(자)에 我(아) 朝鮮(조선)의 獨立國(독립국)임과 朝鮮人(조선인)의 自主民(자주민)임을 宣言(선언)하노라. 此(차)로써 世界萬邦(세계만방)에 告(고)하야 人類平等(인류평등)의 大義(대의)를 克明(극명)하며, 此(차)로써 子孫萬代(자손만대)에 誥(고)하야 民族自存(민족자존)의 正權(정권)을 永有(영유)케 하노라.
半萬年(반 만년) 歷史(역사)의 權威(권위)를 仗(장)하야 此(차)를 宣言(선언)함이며, 二千萬(이천만) 民衆(민중) 의 誠忠(성충)을 合(합)하야 此(차)를 佈明(포명)함이며, 民族(민족)의 恒久如一(항구여일)한 自由發展(자유발 전)을 爲(위)하야 此(차)를 主張(주장)함이며, 人類的(인류적) 良心(양심)의 發露(발로)에 基因(기인)한 世界改造(세계개조)의 大機運(대기운)에 順應幷進(순응병진)하기 爲(위)하야 此(차)를 提起(제기)함이니, 是(시)ㅣ 天 (천)의 明命(명명)이며, 時代(시대)의 大勢(대세)ㅣ며, 全人類(전인류) 共存同生權(공존동생권)의 正當(정당)한 發動(발동)이라, 天下何物(천하하물)이던지 此(차)를 沮止抑制(저지억제)치 못할지니라.
舊時代(구시대)의 遺物(유물)인 侵略主義(침략주의), 强權主義(강권주의)의 犧牲(희생)을 作(작)하야 有史以來 (유사이래) 累千年(누천년)에 처음으로 異民族(이민족) 箝制(겸제)의 痛苦(통고)를 嘗(상)한 지 今(금)에 十年 (십 년)을 過(과)한지라. 我(아) 生存權(생존권)의 剝喪(박상)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心靈上(심령상) 發展(발 전)의 障碍(장애)됨이 무릇 幾何(기하)ㅣ며, 民族的(민족적) 尊榮(존영)의 毁損(훼손)됨이 무릇 幾何(기하)ㅣ 며, 新銳(신예)와 獨創(독창)으로써 世界文化(세계문화)의 大潮流(대조류)에 寄與補裨(기여보비)할 機緣(기연) 을 遺失(유실)함이 무릇 幾何(기하)ㅣ뇨.
噫(희)라, 舊來(구래)의 抑鬱(억울)을 宣暢(선창)하려 하면, 時下(시하)의 苦痛(고통)을 擺脫(파탈)하려 하면, 將來(장래)의 脅威(협위)를 芟除(삼제)하려 하면, 民族的(민족적) 良心(양심)과 國家的(국가적) 廉義(염의)의 壓縮銷殘(압축 소잔)을 興奮伸張(흥분 신장)하려 하면, 各個(각개) 人格(인격)의 正當(정당)한 發達(발달)을 遂(수) 하려 하면, 可憐(가련)한 子弟(자제)에게 苦恥的(고치적) 財産(재산)을 遺與(유여)치 안이하려 하면, 子子孫孫 (자자손손)의 永久完全(영구 완전)한 慶福(경복)을 導迎(도영)하려 하면, 最大急務(최대 급무)가 民族的(민족적) 獨立(독립)을 確實(확실)케 함이니, 二千萬(이천만) 各個(각개)가 人(인)마다 方寸(방촌)의 刃(인)을 懷(회) 하고, 人類通性(인류 통성)과 時代良心(시대 양심)이 正義(정의)의 軍(군)과 人道(인도)의 干戈(간과)로써 護援 (호원)하는 今日(금일), 吾人(오인)은 進(진)하야 取(취)하매 何强(하강)을 挫(좌)치 못하랴. 退(퇴)하야
作(작) 하매 何志(하지)를 展(전)치 못하랴.
丙子修好條規(병자수호조규) 以來(이래) 時時種種(시시종종)의 金石盟約(금석맹약)을 食(식)하얏다 하야 日本 (일본)의 無信(무신)을 罪(죄)하려 안이 하노라. 學者(학자)는 講壇(강단)에서, 政治家(정치가)는 實際(실제)에 서,我(아) 世宗世業(세종세업)을 植民地視(식민지시)하고, 我(아) 文化民族(문화민족)을 土昧人遇(토매인우)하 야, 한갓 征服者(정복자)의 快(쾌)를 貪(탐)할 뿐이오, 我(아)의 久遠(구원)한 社會基礎(사회기초)와 卓犖(탁락) 한 民族心理(민족 심리)를 無視(무시)한다 하야 日本(일본)의 少義(소의)함을 責(책)하려 안이 하노라. 自己(자 기)를 策勵(책려)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他(타)의 怨尤(원우)를 暇(가)치 못하노라. 現在(현재)를 綢繆(주 무) 하기에 急(급)한 吾人(오인)은 宿昔(숙석)의 懲辨(징변)을 暇(가)치 못하노라.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所任 (소임)은 다만 自己(자기)의 建設(건설)이 有(유)할 뿐이오, 決(결)코 他(타)의 破壞(파괴)에 在(재)치 안이하도다. 嚴肅(엄숙)한 良心(양심)의 命令(명령)으로써 自家(자가)의 新運命(신운명)을 開拓(개척)함이오, 決(결)코 舊怨(구원)과 一時的(일시적) 感情(감정)으로써 他(타)를 嫉逐排斥(질축 배척)함이 안이로다. 舊思想(구사상), 舊勢力(구세력)에 羈縻(기미)된 日本(일본) 爲政家( 위정가)의 功名的(공명적) 犧牲(희생)이 된 不自然(부자 연), 又(우) 不合理(불합리)한 錯誤狀態(착오상태)를 改善匡正(개선 광정)하야, 自然(자연), 又(우) 合理(합리) 한 正經大原(정경대원)으로 歸還(귀환)케 함이로다. 當初(당초)에 民族的(민족적) 要求(요구)로서 出(출)치 안이 한 兩國倂合(양국 병합)의 結果(결과)가, 畢竟(필경) 姑息的(고식적) 威壓(위압)과 差別的(차별적) 不平(불평) 과 統計數字上(통계 숫자상) 虛飾(허식)의 下(하)에서 利害相反(이해상반)한 兩(양) 民族間(민족간)에 永遠(영 원)히 和同(화동)할 수 업는 怨溝(원구)를 去益深造(거익 심조)하는 今來實績(금래 실적)을 觀(관)하라. 勇明果敢(용명과감)으로써 舊誤(구오)를 廓正(확정)하고, 眞正(진정)한 理解(이해)와 同情(동정)에 基本(기본)한 友好的(우호적) 新局面(신국면)을 打開(타개)함이 彼此間(피차간) 遠禍召福(원화 소복)하는 捷徑(첩경)임을 明知(명 지)할 것 안인가. 또, 二千萬(이천만) 含憤蓄怨(함분 축원)의 民(민)을 威力(위력)으로써 拘束(구속)함은 다만 東洋(동양)의 永久(영구)한 平和(평화)를 保障(보장) 所以(소이)가 안일 뿐 안이라, 此(차)로 因(인)하야 東洋安危 (동양 안위)의 主軸(주축)인 四億萬(사억만) 支那人(지나인)의 日本(일본)에 對(대)한 危懼(위구)와 猜疑(시의) 를 갈스록 濃厚(농후)케 하야, 그 結果(결과)로 東洋(동양) 全局(전국)이 共倒同亡(공도 동망)의 悲運(비운)을 招致(초치)할 것이 明(명)하니,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朝鮮獨立(조선 독립)은 朝鮮人(조선인)으로 하여금 正當 (정당)한 生榮(생영)을 遂(수)케 하는 同時(동시)에, 日本(일본)으로 하여금 邪路(사로)로서 出(출)하야 東洋(동 양) 支持者(지지자)인 重責(중책)을 全(전)케 하는 것이며, 支那(지나)로 하야금 夢寐(몽매)에도 免(면)하지 못 하는 不安(불안), 恐怖(공포)로서 脫出(탈출)케 하는 것이며, 또 東洋平和(동양 평화)로 重要(중요)한 一部(일부) 를 삼는 世界平和(세계 평화), 人類幸福(인류 행복)에 必要(필요)한 階段(계단)이 되게 하는 것이라. 이 엇지 區區(구구)한 感情上(감정상) 問題(문제)ㅣ리오.
아아, 新天地(신천지)가 眼前(안전)에 展開(전개)되도다. 威力(위력)의 時代(시대)가 去(거)하고 道義(도의)의 時代(시대)가 來(내)하도다. 過去(과거) 全世紀(전세기)에 鍊磨長養(연마 장양)된 人道的(인도적) 精神(정신)이 바야흐로 新文明(신문명)의 曙光(서광)을 人類(인류)의 歷史(역사)에 投射(투사)하기 始(시)하도다. 新春(신춘) 이 世界(세계)에 來(내)하야 萬物(만물)의 回蘇(회소)를 催促(최촉)하는도다. 凍氷寒雪(동빙한설)에 呼吸(호흡) 을 閉蟄(폐칩)한 것이 彼一時(피 일시)의 勢(세)ㅣ라 하면 和風暖陽(화풍 난양)에 氣脈(기맥)을 振舒(진서)함은 此一時(차 일시)의 勢(세)ㅣ니, 天地(천지)의 復運(복운)에 際(제)하고 世界(세계)의 變潮(변조)를 乘(승)한 吾人 (오인)은 아모 躊躇(주저)할 것 업스며, 아모 忌憚(기탄)할 것 업도다.我(아)의 固有(고유)한 自由權(자유권)을 護全(호전)하야 生旺(생왕)의 樂(낙)을 飽享(포향)할 것이며, 我(아)의 自足(자족)한 獨創力(독창력)을 發揮(발휘)하야 春滿(춘만)한 大界(대계)에 民族的(민족적) 精華(정화)를 結紐(결뉴)할지로다.
吾等(오등)이 玆(자)에 奮起(분기)하도다. 良心(양심)이 我(아)와 同存(동존)하며 眞理(진리)가 我(아)와 幷進 (병진)하는도다. 男女老少(남녀노소) 업시 陰鬱(음울)한 古巢(고소)로서 活潑(활발)히 起來(기래)하야 萬彙군象 (만휘 군상)으로 더부러 欣快(흔쾌)한 復活(부활)을 成遂(성수)하게 되도다. 千百世(천 백세) 祖靈(조령)이 吾等 (오등)을 陰佑(음우)하며 全世界(전세계) 氣運(기운)이 吾等(오등)을 外護(외호)하나니,着手(착수)가 곳 成功(성 공)이라. 다만, 前頭(전두)의 光明(광명)으로 驀進(맥진)할 따름인뎌.
♥公約三章(공약 삼장)♥
ㅡ. 今日(금일) 吾人(오인)의 此擧(차거)는 正義(정의), 人道(인도),生存(생존),尊榮(존영)을 爲(위)하는 民族的 (민족적) 要求(요구)ㅣ니, 오즉 自由的(자유적) 精神(정신)을 發揮(발휘)할 것이오, 決(결)코 排他的(배타적) 感情(감정)으로 逸走(일주)하지 말라.
ㅡ. 最後(최후)의 一人(일인)까지, 最後(최후)의 一刻(일각)까지 民族(민족)의 正當(정당)한 意思(의사)를 快(쾌) 히 發表(발표)하라.
ㅡ. 一切(일체)의 行動(행동)은 가장 秩序(질서)를 尊重(존중)하야, 吾人(오인)의 主張(주장)과 態度(태도)로 하 야금 어대까지던지 光明正大(광명정대)하게 하라.
朝鮮建國 4252년 3월 1일
朝鮮民族代表 33人
손병희(孫秉熙) 길선주(吉善宙) 이필주(李弼柱) 백용성(白龍城) 김완규(金完圭) 김병조(金秉祚) 김창준(金昌俊) 권동진(權東鎭) 권병덕(權秉悳) 나용환(羅龍煥) 나인협(羅仁協) 양전백(梁甸伯) 양한묵(梁漢默) 유여대(劉如大) 이갑성(李甲成) 이명룡(李明龍) 이승훈(李昇薰) 이종훈(李鍾勳) 이종일(李鍾一) 임예환(林禮煥) 박준승(朴準承) 박희도(朴熙道) 박동완(朴東完) 신홍식(申洪植) 신석구(申錫九) 오세창(吳世昌) 오화영(吳華英) 정춘수(鄭春洙) 최성모(崔聖模) 최린(崔麟) 한용운(韓龍雲) 홍병기(洪秉箕) 홍기조(洪基兆)
출전 : 차석찬의 역사 창고
2020년 3월 1일 삼일절 101주년을 맞으면서...
독립운동을 주도했던 선조님들을 생각하니...
지금까지 자긍심을 갖기도 하고 나라와 민족을 위해
교육일선에서라도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되겠구나 하면서 노력해 왔고,
또 퇴직할 때와 그 후 약 5-6년까지는
그 자긍심도 유지되는 듯 했고 뿌듯했는 바...!
최근 2-3년동안과 작금에 와서는 자꾸만 선조들께 부끄러워지고,
특히나 3-1절을 맞으며,,, 대구의 코로나 공포와 대처와
부수적인 여러 상황들이 자존심과 자금심 및 가치관에 엄청난 혼란과
사회 및 국가 그리고 교육에 까지 걱정되는 바가 너무나 커서
오늘을 기해 선조들의 그 업적을 읽고 음미하면서...
마음을 추스리고 다짐해보려고 섰습니다.
*맞춤법과 띄어쓰기에 있어서는 원문에 충실하려고 노력하였고
완전히 잘못되고 어색한 부분은 고쳤습니다.
찾아주신 븐들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그 보답으로 가수 이승철 지휘로
탈북청소년들이 함께 연주하고 부르는 홀로아리랑 선물로 등재합니다.
영상위 세모 클릭!-즐감하소서...! 감사합니다.
대구에서 2020년 3월 1일에 majinger-z 꾸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