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가 머물고, 떠나도 느끼는 멋진 대륜!
경북 구미 경구고등학교 교감 이구동
제목이 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좀 이상하지만 끝까지 읽어주세요. 대륜에 대해선 남달리 할 말이 많은 사람입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도 글 쓸 기회가 올까? 의아스러웠는데 아니나 다를까, 쓸 기회가 주어지고 부탁도 있었다.
대륜 가족 여러분! 결론적으로 말해, 나는 누구보다 대륜을 사랑하고 자랑하며 좋아하는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라 자부합니다. 왜냐고요? 그럴만한 이유가 있으니까요. 난 영천 촌놈인데 촌에서 초중고까지 다녔어요. 중학교 때부터 대구로 공부하러 가는 친구들이 어찌나 자극을 많이 주었는지! 난 아예 가정 형편이나 상황에서 엄두도 못 내는 일이라 안정되게 촌에서 학교를 다녔지요. 특히 나는 둘째로 태어났기에 자자손손 대대로 둘째 아들은 거의 농사꾼으로 키워오신 집안의 내력때문도 크게 작용했으리란 판단이 선다. 나의 아벗님도 둘째로 자라 농사지으셨기에 둘째인 나더러는 초등학교 졸업하고부터 시작해 농사꾼으로 키우려는 작정을 하고서는 고비 고비마다에서 긔 시도를 해 보신 경우였음을 엿볼 수 있었다. 그런데 중3 졸업 시기에 와서 몇몇 친구들이 경고니? 부고니? 대륜이니? 하면서 진학 얘기를 한 덕분에 학교 이름 정도는 알고 있었지요.
고 2학년 때, 키가 좀 큰 덕에 지금의 대구 시민 운동장에서 열리는 학도 체전에 영천군 대표로 참가한 적이 있었다. 아마 67년인 것 같다. 사실 기량과 기록이 좋아서라기보다 다른 학생들을 훈련시켰지만 키가 좀 큰 내가 기록이 좋았으니 선생님께선 나를 출전시킨 것으로 생각된다. 학교에서 6km나 떨어진 산길, 물길, 자갈밭길이랑, 오르내리막 길들을 걷는 것보다 뛰는 경우가 더 많았으니 자연적으로 운동의 기초 기량은 길러진 모양이었다.
투포환과 투원반 종목의 자세만 정확히 익히고 400M계주 등에 출전하게 되었다. 나는 그 때 처음으로 밑창이 생고무로 된 운동화 한 켤레를 얻어 신게 되어, 기분이 날아갈 듯 머리끝까지 치달았었지만 대륜 학생들이 나를 첫 번째로 주눅 들게 해 버렸다. 밑창에 침이 여럿 달린 신 즉 스파이크를 신고 어느 종목에든지 의기양양하게 자기 기량들을 마음껏 발휘하는 모습 때문이었다. 그리고 100M, 200M, 400M계주 등에서는 그 때 알았지만 한 수 더 떠서, 스타팅 불럭을 사용하고 있지 않는가! 이러고서는 출발선상에서 탕 하는 신호 소리가 무섭게 우리는 뒤로 가는 듯, 저들은 저만치 3-4M 앞서 내달아 버리는 것이 아닌가! 부러움과 주눅을 넘어 어이가 없었다. 선무당 징 장구 나무랄 수밖에! 정말 촌닭 장에 갖다 놓은 것처럼 어리버리하다 경기를 마치는 둥 마는 둥 했다.
감성이 무척이나 예민하던 고 2때이니 오죽이나 했을까? 고 3을 마칠 시기에 예비고사를 대구에서 치르게 되었는데 하필이면 대륜에서 치를 게 뭣이고! 아마 대봉교 옆 수성동 옛 고등학교 제일 남쪽 건물 2층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교문에 들어서기 무섭게 촌놈이 보기엔 탁 트인 운동장, 멋있는 수영장, 테니스장,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위용을 자랑삼던 설송들, 그리고 고색이 오히려 찬연했던 붉은 벽돌 건물, 아마 중학교 사용 건물이었을 것이리라. 이 모든 것들이 두 번째 나를 주눅 들게 했노라. 대륜에서 예비고사를 치른 후 ‘나는 교직에 몸담아 우짜든지 나를 주눅 들게 한 대륜에서 학생들을 한번 가르쳤으면!’ 하는 꿈을 간직하게 되었다.
교직에 나온 후 대륜 출신으로 나를 또 주눅 들게 한 사람이 있었으니 멋쟁이 안승태 선생님이시다. 얼굴만 잘 생겼으면 그만이지 우짠 일로 그렇게 대륜인다운지! 친구 관계로 맺어진 이후 어언 27년 세월이 흘러도 그의 대륜인다움이 여전하다. 친하고 세월이 갈수록 대륜인 친구다움이 배어있어 내 옷깃을 항상 여미게 한다. 그와 함께 하양 무학고에서 근무한 인연의 끈이 계기가 되어 다시 대륜이란 곳으로 이어졌다. 80년 2월 어느 날, 이 친구가 워낙 조심스런 사람이라 속 깊은 뜻은 나타내지 않고서 “자네 이력서를 들고 교사 채용에 도전 한번 해보게.”란 소식을 주었다.
대륜에 채용 후보 면접 보는 날 이 친구 느닷없이 최유련 교장선생님께 나를 이렇게 소개했다. 교장선생님 “이 사람 저가 보증합니다. 저를 채용한 것보다는 나을 것입니다. 이 사람이 못하면 저가 책임지겠습니다.” 아마 이 사람이 나를 또 주눅 들게 한 친구임에 틀림이 없잖아요. 그래서 난 드디어 80년부터 꿈에 그렸던 대륜 학교 교사가 되었던 것이다.
이젠 대륜에 주눅 들지 않고 나도 당당한 대륜인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이었지요. 3년 내지 6년간 대륜에서 배우고 난 사람들이 대륜인이 되니까, 그 대륜인을 가르치고 기르는 선생님들도 바로 대륜인이라고 주장하고 싶었다. 대륜에서 경험과 경륜을 쌓아 올리면서 평생을 몸바쳐 대륜인을 기르셨고 가르치시는 선배 후배 선생님들께 존경의 뜻을 표해야 하겠습니다. 이제 와서 생각하니 나도 23년을 근무했으니 대륜인 대열에 넣어줄 것을 희망합니다.
대륜의 교훈 “스스로를 속이지 말자, 남을 사랑하자.”는 것은 아주 간결하고 강한 이미지를 풍기게 한다. 그리고 이것은 대한민국 어디에다 내 놓아도 더 좋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스스로를 속이지 않는다는 것은 곧 성(誠)=참=無自欺也=충(忠)=盡己之謂忠也로 설명이 되는 것으로 참이요(=眞), 언행일치[言+成=誠], 스스로 속임이 없는 것, 자기 중심잡기요, 자기에게 정성을 다한다는 뜻 들이다. 궁극적으로는 ‘자기를 사랑하고 중심 잡는 일’의 다짐으로 개인윤리의 극치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남을 사랑한다는 것 곧 자기 사랑과 중심 잡기의 확대로서 사회 윤리를 말하는 것으로. 가족 윤리에다 적용시키면 부모는 자애이고 자식은 효도이고, 친구에겐 상호 신의일 것이고, 직장에선 책임을 다하는, 나아가서 국가에 대해선 목숨을 아끼지 않을 수 있는 충성이 아니겠습니까? 이를테면 이인호 소령과 같은 정신과 실천이 곧 이것 아니겠습니까?
난 여기서 다시 주눅 들도록 대륜을 좋아하게 되었답니다. 이 정신을 23년 동안 대륜에 근무하면서 배우고 실천하고 가르쳤다. 그러니 대륜에 주눅 들었던 사람이 이제 대륜인이 되었지요. 우리나라 어느 학교를 가도 대륜만큼 교명이 멋진 곳은 없는 듯 하다. 흔히 지명이나 사람 이름을 따서 교명을 지은 학교보다는 더욱 멋스럽지 않는가?
부를수록 의미심장한 대륜(大倫)! 삼천리 어느 골 곳을 가도 대륜 출신들이 제자됨에 떳떳이 학교와 스승을 찾아오고, 또 안 찾아와도 이들이 어디서나 샛별의 그 위상과 자존심 그리고 빛을 발하고 있으니 얼마나 든든한지!...... 나에게 이런 의미를 부여한 대륜에서 제자들을 가르치고 교직을 마무리하려는 생각까지도 했었다.
그 간에 고입연합고사 및 검정고시 출제위원, 수능검토위원, 대구교육대학교(2년)와 동산 간호대학(2년) 경북실업전문대학(후엔 미래대학) 유아교육과(2년), 대구교원연수원(1급자격연수과정 강사 2년), 퇴임 후 구미대학 유아교육과(2년), 영진대학 유아교육과(2년)등에서 교수학습방법, 교육과정 및 평가, 교육사, 교육학, 교육원리 유아교육방법 등의 강의를 하였던 적도 있다.
이렇게 대학 강의를 해본 것도 참 아이니컬하다. 열심히 대학 걍의를 여러 곳에 해본 그 경험을 알고 응원해주셨고 대학원 지도교수이셨던 감학수박사님께서 모 대학 학장님을 소개해 주셨고, 만나본 후 그간의 이력을 보시고서는 자기 대학에 교수채용 응시원서를 제출해보라는 통보를 받고 원서를 접수시켰고 채용하겠다는 확답을 얻고... 문교부까지 접수할 모든 서류를 제출한 바...!
대륜고에 2월 20일 경에 좀 일찍 사의를 표하고 후임을 받도록 양심껏 처신을 해 뒀다. 하지만 2월 말에 대학으로 가서 시간표까지 다 짠 상태에서... 편안한 마음으로 3월 2일자 10시에 시무식에서 사령장 수령을 하고 난 다음 수업할 계획으로 학교에 도착했다. 사령장을 주는 시간에 날 날벼락이 떨어졌다. 아니나 다를까. 하늘이 무너지고 세상이 꺼꾸로 보이는 일이 벌어졌다. 여러 교수진이 도열해 있는 강당에서 학장님은 눈에 보이지 않고 재단이사장이 사령장을 전달하는 데 ‘시간강사로 발령함’이란 사실이 아닌가!... 재단이사장으로 부터 사령장을 받아든 순간 그 종이를 찢어날려버리고 하늘을 쳐다보면서 학교를 나왔던 날....! 온 강당의 참여자 모두가 난리가 났을 것...!
이튿날 시내 따로 있는 재단이사장실을 찾아 한 바탕 소란을 피웠지만...! 소용이 없는 듯 했고... 이 사실을 낱낱이 기록하여 문교부에 탄원서를 제출했고 그 후 다시 이 곳 저곳 대학들을 돌아다니면서 소위 강사... 중략...그 후의 생활은 정말 실의에 빠질 위험도, 인생과 사회에 대한 회의감도 참 많이 젖기도 느끼기도 했었다. 증략...! 그 해 몇 개월이 지나면서... 그 대학엔 문교부 감사도 받으면서 어려움에 처했다고...! 특사가 만남을 제의하면서 2학기 즉 6개월 후에 정식교수로 채용해주겠다는 제의까지 받았지만 사절했다. 잘못했다는 사과까지 있었기에... 문교부 감사를 중도에 무마시켜주기도 했다. .
밝히기 거북한 사안이지만 사학에서 비일 비재하게 벌어진 채용관계 비리등에 휩싸이지 않았던 것이 위와 같은 결과를 초래한 것이니... 다른 분들은 짐작만 하면 될 것 같습니다. 반년이 지나면서...! 실의에 빠져 생활하고 있는 저에게 대륜고에서 연락이 왔었다. 당신은 잘못을 저질러서 자기의 직업을 잃은 사람이 아니고 세파의 비리에 휩쓸려 벌어진 사안의 희생양이니...! 우리학교 전 교직원들과 재단은 일심동체가 되어 다시 채용해주자는 합의의 목소리를 나에게 전달해왔으니 이런 은전이 세상에 있으랴...! 중략!
이 소식이 전해지자 주변 분들과 식구들은 한 목소리로 대륜고에 다시 들어가라고 야단이 났습니다. 그래서 1년 후 대륜고로 다시 복직했습니다. 그 후는 최선을 다해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서 정말 인생을 걸고 사명감을 갖고 근무했습니다. 하지만 윤리부장 학년부장 학생부장직을 수행하는 과정에서 늘 나는 이제 더 이상의 승진이나 보직 같은 것은 바라지 않았다.
그런데 저의 입장을 예견한 김두원 교장선생님께서는 2004년 2월에 구미 경구고등학교 교감채용에 추천해주시는 바람에 새로운 교직출발과 변화가 시작되었다. 사실 처음 추천해주셨을 때 또 걱정이었다. 이번에는 대륜고에 사표를 내지 않고 저 쪽 학교에 채용이 확실시 되었을 때 사표를 내려했다.
집사람과 함께 차를 몰고 경구고등학교를 찾아갔으며, 주변에서 경구고에 대한 이미지를 탐색해보기도 했다. 가능성을 들을 수 있었다. 그래서 재단이사장실로 안내되어 이사장님을 만났다. 인사 후 바로 얘기과정에서 용기를 내어 사례금이나 채용에 관계되는 금전을 요구하는지 물어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얘기를 하고나니 깜짝 놀라시면서... 조금 생각해보자 하시면서 돌아가라는 얘기를 듣고 대구로 돌아왔었다,
다음날 대륜고에 다시 출근을 하니 김두원교장선생님께서 나를 불렀다. “이부장 어제 구미 경구고에 가서 이사장께 이런 이런 얘기(채용에 대한 금전수수를 하는지등)를 했지요?” “예”라고 하였더니... 왜 그런 얘기를 했는지 교장선생님께서 다 설명을 해 드렸다고 하시면서... 오늘 다시 경구고등학교로 오라고 하더라고 하셨다. 대화가 진행되는 동안 이상한 분위기를 느낄 수도 있었다.
그 다음날 다시 학교로 찾아갔었고 채용을 하겠다는 승낙을 받았다. 이 학교에 근무계기는 대구교대 은사이이시며, 대륜고 교사이셨고. 국립상주대학교 총장이셨던 이낭우은사님의 배려와 인정에 의한 것이었다. 교감으로 재직하는 동안 경구고등학교를 인문계 고등학교로서의 위상 재정립과 발전에 기여했다고 자부하고 싶다.
대륜에 근무하셨고 대륜을 무척 좋아하는 노 스승 이낭우 재단이사장님으로 부터 부름을 받게 되었다. 대륜에서 배웠고 터득한 그 교육적 사명감과 선배 선생님들이 가르쳐 준 경험들을 바탕으로 구미에서 대륜인에 버금가는 경구인을 길러달라는 부탁 반 압력 반을 가슴에 지닌 채 새롭게 도전했습니다. 이 지면을 빌려 그동안 대륜에서 얻은 은혜에 대해 감사의 뜻을 기록해두고 싶습니다.
경구고등학교에 근무했지만 늘 대륜 정신을 가슴깊이 새기며 생활했습니다. 학생들이 대륜에 들어오면 대륜 정신을 배우고 익히며 졸업하는 쯤이면 좀 더 의젓하게 실천하게 되고, 세월이 흘러 사회에 진출하면 모교를 더욱 사랑하고 좋아하게 되는 대륜인들을 보아왔기에 항상 든든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래서 대륜은 창공에 빛나는 샛별과 같이 멋있고 영원히 발전하는 학교가 될 것이란 기대도 갖고 생활한다. 대륜을 사랑하는 모든 분들에게 건강과 행운을 빌면서 안녕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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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륜교정에 들어서면 현관 오른쪽 10m 전방에 동애 소효영선생님이 쓰신
대륜인 돌이 학교무게만큼이나 육중함과 오랜 전통을 자랑하듯 많은 사람을 반긴다.
[동영상] 중국 사천성 그림자 민속공연<표시하기 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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