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일 효자 효부로 만들어주신 어머님!
2004년 3월 구미로 이사 온 후로 고향을 찾아가는 횟수가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곧 어머님을 뵙는 기회가 줄어들었다는 뜻이다. 어머님을 여의고 이제 와서 생각하면 자주 못 찾아간 것 정말 잘못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스친다.
구미와 대구가 얼마인데 토요일이나 일요일을 활용하여 좀 더 자주 찾아뵙고 시간을 같이 했으면! 대구에서 생활 할 때는 적어도 한 달에 두세 번 이상은 찾아가고 어머님도 자주 우리 집에 오셨으니 그런대로 평상의 생활은 유지될 수 있었다. 훈이 엄마도 구미에서 대구로 출퇴근하다 보니 역시 찾아가 뵙는 시간이 분명히 줄어졌다. 어머님은 얼마나 더 외로웠었을까?를 생각해보니 날이 갈수록 마음이 미어진다.
하지만 한 번도 외롭거나 어렵거나 아파도 밖으로 표현한 바 없으셨다. 집에 갈 때마다 얼마나 좋아하시는지를 생각하면 짐작이 간다. 어느 추운 겨울날 구미에서 어머님 뵈러 간다고 연락을 드리고 차를 몰고 출발했다. 아마 6시나 7시가 되어야 도착할 것 같아서 생각을 깊이 못하고 연락드린 관계로 어머님은 지팡이를 짚고 500M가 넘는 경로당 앞을 지나 마을 어귀에 와서 후들 후들 떨리는 다리의 아픔을 잊으시고 거의 두 시간을 아들 며느리 온다고 추위마저 아랑곳 않고 불편한 몸으로 기다리신 모양!
우리가 도착하면 야야! 춥제? 부터 시작하여 뜨시게 입었나? 별 연고가 없었나? 하시면서 안부를 묻는다. 예... 어머니! 우리는 잘 있었습니다. 어머님덕분에... 빙그레 웃으시면서 “내 덕분에?... 하! 하! 하!” 하신다. “니는 내(엄마)덕분이라 하지 말고 야(며느리를 가리키시며...) 덕분이라 해라.” 하신다. 그래서 한바탕 웃음꽃을 자아내게 하신다. 농담이나 속담 같은 것을 참 잘 활용하신다. 우리들을 키울 때나 집안 아이들에게 나무라야 할 때면 직설적으로 말씀하시지 않고 꼭 은유법을 쓰셨다. ‘못된 송아지 엉덩이에 뿔난다.’는 둥 ‘세 살 버릇 여든 간다.’든지 ‘도랑치고 가재 잡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배먹고 이닦는’ 등의 얘기를 유효적절하게 활용하신다.
우리 어머님은 연세가 8순을 넘으시고는 부처가 되셨다. 늘 어머님 건강 걱정에 조심하시라는 말씀을 드리면...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인자 내 걱정은 하지 말거라.” “나는 밭고랑에 넘어져도, 개울에 빠져도, 버스타고 가다 넘어져도 그기 마 천당인기라. ㅎㅎㅎ!” 진심어린 뜻으로 얘기하신다. 이럴 때마다 어머님을 유심히 쳐다보고 만져도 드리면서 속으론 눈물을 얼마나 흘렸는지 모른다. 지금도 이 글을 쓰면서 눈시울이 뜨거워 옴을 감출 수 없다.
나는 언제나 어려움이 닥쳐오면 어머님을 생각하고 힘을 내고 마음을 가다듬고 용기를 낸다. 어머님께서 잘 못 걸으실 때부터 손잡이 사각 밀대를 사 드리려 했는 데 기어이 “내 잘 못 걷는 모습 다른 사람들에게 구경시킨다.” 하시면서 만류를 하셨는가 하면, 대구나 서울이나 부산을 가실 때 휠체어를 활용하시도록 권고하였을 때도 참 많은 애걸을 하고난 후에 성사된 적이 있다. 한번은 동대구 지하철 역 쪽으로 내려가야 할 일이 생겨서 어머님을 업고 내려갈 작정을 하였던 바 어머니께서는 불편한 몸으로 안 업히시는 것은 물론이고 억지로 걸으시려 할 때도 휠체어를 빌려와서 활용한 적이 있었다.
2008년 5월 어버이날 고향으로 찾아가 어머님 뵙고 난 후에 그 다음 주 하도 어머님이 보고싶어 전화를 드리고 고향 집으로 달려갔다. 갈 때 어머님께 오늘 어머님 모시고 김천 직지사를 가기로 했으니 허락을 해주십사 하고 부탁해두었고 이 부탁은 늘 훈이 엄마가 했다. 훈이 엄마가 하면 어지간한 것은 다 들어주신다. 그래서 구미에 의료기 상사에 가서 휠체어를 1일간 차용해 싣고 고향으로 달려갔다. 고향에서 어머님을 모시고 구미로 와서 점심을 드시고 난 다음에 김천 직지사에 도착했다.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휠체어에 어머님을 뫼시고 우리 부부는 밀면서 이 곳 저 곳을 구경시켜 드리곤 했다. 그런데 어머님은 휠체어를 타시고는 구경하시는 것 보다는 입을 꾹 다무시고 표정이 밝지 않으셨다. 그래서 나는 벌써 어머님께서 내가 이렇게 휠체어를 타고 구경 다니는 것이 남 보기에 쑥스럽고 당치 않다는 체면 때문인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지레 짐직하여 화장실 가는 척하고 옆으로 빠지기도 했다.
그래서 어머님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앞에도 가고 또 갈 곳으로 미리 가서 만나는 아저씨나 아주머니에게 이렇게 부탁했다. “대단히 죄송합니다만 저기 할머니 한 분 휠체어 타고 오시지요. 저 할머니가 우리 어머니인데요 이런 말씀 좀 해주실 수 있겠는지요! "와! 할머니! 안녕하세요? 참 잘 오셨습니다. 이렇게 휠체어를 타고오시니 참 좋지요. 아들과 며느리가 같이 와 주었군요. 요즈음 이런 효자 효부가 잘 없습니데이...” 혹은 “할머님 정말 잘 오셨내요. 기분 좋지요. 다른 사람들 보이소. 이렇게 잘하는 아들 며느리 잘 없잖아요.”
ㅎㅎㅎ! 아니나 다를까? 성보박물관 해설사 겸 지킴이 아주머님께서는 “그것은 어렵지 않지요. 꼭 해드리겠습니다.” 하더니 그 높은 계단을 단숨에 내려와서 우리 어머님 곁으로 다가와서 환하게 미소지은 얼굴로 우리 어머님 손을 덥썩 잡으면서... 위와 같은 얘기를 서슴없이 해 주셧다. 그제서야 우리 어머님 환한 얼굴로 여기 저기를 두리번 두리번 하시면서 “야야! 너들 말이 다 맞다.” “많은 분들이 너희 둘을 효자 효부라고 칭찬하네... 참 기분이 좋다.” “예! 어머니” “오늘 우리가 어머님께 평소에 잘 못하는 데도 오늘은 효자 효부 되엇잖아요.” “정말 기분이 좋습니다.” “어머님! 다음에 또 우리 효자 효부 소리 듣도록 해 주이소.” “오냐! 오냐! 너들 잘 한다. 그래! 그래!” 고개를 끄덕 끄덕 하셨다.
그날 직지사 대웅전 부처님이 우리 어머님을 보고 환하고 웃으시는 모습을 보고 다시 우리 어머님 얼굴을 보니 부처님 같이 환한 웃음을 지으시고 계셨다. 참 기분 좋은 하루였고 많이 부족하고 늘 어머님께 아들노릇 다 못하는 자식을 효자 효부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어머님! 감사합니다.
어머님 돌아가신 일주년을 맞으면서 어머님을 다시 불러보니 눈시울이 붉어옵니다.
어머님 은혜/이정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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