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생각하며!

6-25날에 읽는 17살 학도병의 편지!-다시는 이 땅에 전쟁이 없기를...

마징거제트 2015. 6. 25. 08:03
17살 학도병의 편지


아버님 그리고 어머님께!

다행히 이 편지가 부모님께 전해져
부디 두 분이 흐뭇한 표정으로 이 편지를
받아보시길 기대하며 연필을 듭니다.
할머님은 건강하시죠?

동생들에게도 제가 많이 보고 싶어한다고
전해주십시오. 저는 지금 부산의 낙동강 근처입니다.

이곳은 생각보다 정말 비참하고
참담하고 너무나 어렵고 힘든 곳입니다.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폭음 속에서 놀란 가슴을
움켜쥐고 빗발치는 총탄 속에서 매일 같이
붉은 피에 물들어 죽어가는 전우들을 보면
몸서리치게 부모님이 그립습니다.

집에 돌아가고도 싶지만 나라를 잃으면
가족들도 잃는 것이라는 대대장님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용기를 내어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새로이 하나 된 나라 아래서 행복하게 동생들이
뛰어놀고 커갈 것을 생각을 하니 하루하루 힘든
전투들도 견뎌 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집과 가족들이 못내 그리운 것도 사실입니다.
사실 어머님께서 해주셨던 참기름을 듬뿍 바른
갓 쪄낸 쑥개떡이 가장 그립습니다.

꼭 집으로 돌아가 다시 한 번 그리운 어머님의
쑥개떡을 먹어 볼 수 있길 간절히 바래봅니다.

어머님 아버님! 한 번도 말씀드린 적 없지만
마음속 깊이 두 분을 사랑하고 있음을 전합니다.
부디 다시 뵐 날까지 내내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 큰 아들 의수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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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강 다부동 전투에서 전사한 17살 학생이
전투 중 부모님께 보낸 편지입니다.

세상 무엇보다 값진 헌신!

- 가장 귀중한 사랑의 가치는 희생과 헌신이다 (그라시안) -
 
▼ 아래 태극기 있는 동영상(6.25의 노래)을 플레이(▷)하십시오, 오신 김에 다른 동영상도 즐감하시길...!

비목과 6.25

비목

초연이 쓸고 간 깊은 계곡 양지 녘에
비바람 긴 세월로 이름 모를 이름 모를 비목이여
고향 초동 친구 두고 온 하늘가
그리워 마디마디 이끼 되어 맺혔네

궁노루산 울림 달빛 타고 달빛 타고 흐르는 밤
홀로 선 적막감에 울어 지친 울어 지친 비목이여
그 옛날 천진스런 추억은 애달퍼
서러움 알알이 돌이 되어 쌓였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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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목의 작가 한명희는
1939년에 태어난 충북 중원에서 태어났다.
6·25전투가 치열했던
강원도 화천에서 군 생활을 하였다.

이후 작곡가 장길남의 요청으로
비목은 작곡가와 작사가의 마음의 일치가
아픔을 함께 나눈
우리나라의 대표 가곡이 되었다.

작가 한명희는 군 생활 중
남북한 군의 치열했던 격전지 능선에서
개머리판은 거의 썩어가고
총열만 남아있는
카빈총 한 자루를 주워 왔다.

깨끗이 손질하여 옆에 두곤
그 주인공에 대하여 가없이 죽어간 이들의 아픔을
수많은 밤을 지새우며
그들을 향한 공상을 한없이 이어갔다고 한다.

죽이고 죽는 산은 피로 물들었고
총에 맞아 죽어가는 동료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면서
그 동료를 방패로 앞에 두고
싸워야 하는 기막힌 전쟁 상황!
이들에게 무덤은 오히려 사치였다.

사회도 모르는 젊은 나이에...
이들은 그렇게 죽어갔다.

세상도 나가보지 못한 이들의 죽음은
부모 형제 동생들의 가슴에 남아
평생을 울면서 살아왔다.
그 고통을 이기고 이기며 살아온 60여년의 세월!

이 시대에 우리나라는 세계정상에 섰다.
하지만 이들의 피눈물을 얼마나 알며 이들의 고통은
어디에서 보상받나?

우리는 이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세계 속에 우리를 우뚝 세워 피워보지도 못하고 죽어간
저들의 고통을 잊게 해드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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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월의 이땅에 산하!
젊음을 불사르는 한 많은 이들의 유월에 산하
65년이 지난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한 많은 긴 밤은 오열하고 있습니다

- 고맙습니다! 그대가 있어 오늘 우리가 있습니다 -



* 경산에 있는 성암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