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50. 12. 14. 서울역, 남행 피난민들이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1950. 12. 27. 흥남, 얕은 수심으로 수송선이 해안에 닿을 수 없자
유엔군들이 바다에 뛰어들어 LST로 가고 있다.
▲1950. 12. 24. 흥남, 유엔군들이 철수 후 부두가 폭파되고 있다.
▲1950. 12. 28. 서울, 피난민들이 강추위 속에
한강 얼음을 깨트리며 나룻배로 남하하고 있다.
▲1951. 1. 5. 피난 행렬 속의 소년과 소녀.
소달구지가 힘겨워하자 힘을 보태고 있다.

▲1950. 11. 1. 전란으로 폐허가 된 서울.

▲1950. 12. 28. 끊어진 한강 철교. 오른쪽은 임시로 만든 부교.
▲1951. 1. 3. 한강 철교 부근의 언 강을 피난민들이 걸어서 건너고 있다

▲1951. 3. 16. 하늘에서 내려다 본 중앙청 광화문 일대의 폐허.
▲구호 양곡을 먼저 탄 소년과 구호품을 타기 위해 줄을 선 주민들.
▲ 1950. 10. 12. 처참하게 학살된 시신들
▲1950. 12. 16. 폭격에 엿가락처럼 휘어진 철교.

▲1950. 12. 17. 보급품을 실은 화물 열차가 폭격에 불타고 있다.

▲ 훈련소에서 교육을 마친 신병들이 전선으로 가고자
대구역전 광장에 집결해 있다. 1950. 12. 18. 대구.

▲ 1950. 12. 18. 전방으로 떠나는 신병들.

▲ “총알을 요리조리 잘 피해서 어예든동 살아 오이라.”
“어무이 걱정 꽉 붙들어 매이소. 어무이 아들 아잉기요.
내는 꼭 살아 돌아올 깁니다.” 1950. 12. 18. 대구역.

▲1950. 12. 21. 경북 왜관. 낙동강 철교 어귀에 부서진 북한군 탱크.
▲ 1950. 7. 26. 맥아더 장군이 전선을 시찰하는 중,
종군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오른쪽 워커 장군.

▲ 1950. 8. 18. 백선엽 장군(가운데)이 미군과 함께 작전을 세우고 있다.

▲ 1950. 9. 16. 구포 신병 훈련소에서 격려하는 이승만 대통령.

▲ 1951. 2. 7. 전선을 시찰하는 맥아더 장군.

▲ 1950. 10. 22. 선량한 주민들을 학살한 현장. 누가 그들을 죽였을까?
ⓒ2004 미국 문서기록보관청.

▲ 1950. 11. 2. 거리에 버려진 아이들이 트럭에 실려 후송되고 있다.

▲ 1950. 11. 13. 덕산광산에 482명을 생매장한 갱도에서 시신을 꺼내
늘어놓은 것을 한 아버지가 아들을 찾고 있다. “제발 내 아들이 아니기를...”

▲ 1950. 11. 13. 생매장된 남편을 갱도에서 찾아 오열하는 아내

▲ 1950. 8. 12. 스무살도 안된 어린 북한군 포로.

▲ 1950. 8. 10. 폭격으로 불타는 마을.
▲ 포화에 쫓기는 피난민. 1950. 7. 29. 경북 영덕,

▲ 1950. 7. 29. 경북 영덕.
떠나는 피난민 행렬.
▲ 시궁창에 박힌 불상한 죽음 1950. 7. 29. 경북 영덕,
논두렁에 머리를 처박고 죽은 북한군 병사.
▲ 1950. 7. 29. 마을 소년들이 주먹밥을 만들어 군인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 1950. 7. 29. 야간에는 전투를 하고 주간에는 쉬고있는 군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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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0. 8. 4. 피난민들이 정착한 산동네 판자촌.

▲ 1950. 8. 8. 누가 이 아이를 이렇게 했을까?
▲ 폭격으로 불타는 서울
▲ 폐허가된 서울을 찾아 환도하는 시민들
6.25 동란 희생자 통계
한국은 전사자 137.899명, 전상자 45.742명, 실종,포로 32.8387명
미국은 전사자 36.940명, 전상자 92.134명, 실종·포로 8.176명
UN군운 전사자 3.094명, 전상자 13.438명으로 기록된 바
김일성의 불볍남침은 역사에 처참한 아픔을 남겼다
잊지말자 6.25! 이룩하자 조국통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