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글 |
작지만 멋진 추억!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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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입학 전 2월이 오면 즐겁고 신나는 놀이중 하나가 연날리기 대회나 연날리기였었다. 어느 날 할아버지께서 정성스럽게 만들어준 꼬리연을 멋지게 날린 나머지, 세찬 바람에 너무 잘 올라 도를 넘기면서 재롱까지 부리다가 줄을 터뜨려 연을 날려 보내버리게 되었다. 그 연줄을 잡으려고 몇 10M를 달려 허겁지겁 내닫다가 몇 번이나 논둑을 헛디뎌 넘어지고 또 따라갔지만 잡지는 못하고는 마침내 울음까지 터뜨렸다. 운다고 해결될 문제가 결코 아니었기에 집으로 돌아와서 할아버지께 말씀드려 다시 만들어달라고 부탁하는 수 밖에 없었다. 곁에 가서 팔도 주물러 드리고 등을 긁어드리기도 하여 애교를 떨고 난 연후에 자초지정을 말씀드리면 할아버지께서는 너털웃음을 웃고는 다시 연을 만들어 주시곤 했다. 그 연을 다시 들고 들로 나왔을 때는 천군만마를 얻거나 호랑이 등을 탄 장군 마냥 기세가 등등하여 기뻐했던 일... 초등학교 다닐 때 어머니께서 가을에 작은 풋고추와 고추 잎파리를 뜯어 말려 깨소금과 절여만든 말랭이 반찬을 담임선생님께 드리라고 하여 거절은 못하고 받아들고는 하늘같이 존경하고 천사같은 우리 담임선생님이 어떻게 이런 음식을 잡수실까하는 생각에 학교 가는 길에 보리밭 속에 감추어 놓고서는 어머니께는 갖다드렸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있었다. 그러나 그 날 이후에는 괜히 어머니를 뵈어도 선생님을 만나서도 뭔가 마음이 편치 못하고 며칠동안 밥맛도 없었다 . 며칠이 지난 후 드디어 올 것이 오고 말았다. 어머니께서 '얘야, 며칠 전에 선생님께 갖다드리고 난 빈 그릇은 받아와야 하니 선생님께 말씀드려라'하셨다. 가뜩이나 밥맛이 없던 차 이젠 밥맛이 문제가 아니라 잠도 밥도 정상이 되지 못하는 일이 지속되었다... 걱정이 되어 보리밭으로 가봤지만 이미 그 반찬 단지 속에는 개미들만 요란한 잔치집이 되어있었다. 며칠 후 어머니께 실토를 안 할 수가 없었다. 용기를 내어 자초지정을 말씀드리고는 문지방 위에 늘 준비해둔 회초리를 아얘 어머니에게 드리고서는 목침 위에 올라가서 아랫도리에 피가 송글송글 맺히도록 벌을 받고 용서를 빌었던 일, 그 상황에서 아프기는 해도 그렇게 한 연후의 마음은 얼마나 후련했는지... 중학교를 졸업하고 소를 세 마리나 팔아야하는 뜻하지 않던 어려운 일이 생김으로 해서 머슴을 내보내고는 아버지께서 너는 공부는 그만하고 집안 일을 거들어야한다는 청천벽력이 떨어졌다. 어쩔수 없는 환경에 거역은 있을 수 없는 일, 마을에 그렇게 학교에 다니는 학생이 별로 없으니 크게 자극은 되지 않았지만 공부에 대한 열의는 절대로 식을 수는 없었는 것 같았다. 지게에 책을 얹어서 틈나는 시간에 보는 기쁨과, 남이 보지않는 곳에서 책을 훔쳐보는 듯한 보람은 겪어보지 않는 사람은 잘 모를 일들, 어느날 보리타작을 하다가 흐르는 땀과 범벅이 된 보리수염을 견딜 수 없어 단장으로 몰래 도망가서 아벼지를 애타게 했던 일, 4Km나 떨어진 먼 산에 불탄 소나무를 베러간다고 동네 머슴들과 청년들 틈에 끼어 소에 질메 방틑을 갖춰 나섰는데 솜씨가 부족해 남들보다 나무하는 속도도 느리고 짐싣는 솜씨도 부족해 어슬프게 네 단을 묶어서 소에다 싣고 굽이굽이 열 두 굽이를 오마조마 불안하게 내려오다가 마지막 굽이에서 그만 길옆의 나뭇가지에 짐의 앞부분이 걸리는 듯 휘청거렸다. 마침내 소는 균형을 잃고 구르기 시작했으며 나는 혼비백산이 되어 소와 같이 구르고 넘어졌다. 정신을 바짝 차렸을 땐 이미 소는 네발을 하늘로 향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북띠(소의 짐을 고정시키기 위한 밧줄과 고리)를 끊고 소를 일으켜 세웠을 땐 이미 다른 청년들은 모두 내려 가버린 뒤라 걱정은 태산이 부족이었다. 나무를 다시 싣는다는 것은 생각도 못할 일이었다. 빈 질메 방틀에, 빈 지게로 내려오는 수밖에 없었다. 일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소를 몰고 내려오려는 순간 또 한번 내 눈을 의심하게 했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소뿔 한 쪽이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평소 재산이자 온 식구가 애지중지하던 소인데 웬 날벼락인가? 웃옷을 찢어서 피가 흐르는 부분을 동여 메었다. 소는 놀라고, 애틋한 모습으로 힘이 빠져 축 늘어져 있었고, 나는 패군지장이 되어 울 겨를도 없이 터벅터벅 집을 향하고 있었다. 자라밭골을 거쳐 범덤을 지나 장승백이 골에 도착했을 때였다. 기다리다 지친 어머니께서는 벌써 무슨 변고를 예측이나 하셨는지... 새빗골 어귀까지 마중을 나오셨다. 어머니를 보자 나는 지게를 벗어 던지고 어머니의 품에 매달려 얼마나 서럽게 울었는지 모른다. "어머니! 난 이런 일을 정말 못하겠습니다." "제발 돌아오는 새 봄에는 학교에 보내주십시오..." 용서를 빌기는커녕 울분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이 일이 있은 후 부모님께서는 학교에 보내주려는 마음을 굳히신 것 같았다. 나는 요즈음도 공부가 무엇보다도 더 쉽다고 얘기하고, 옛 추억을 더듬어 얘기할 땐 이 일을 상기하곤 하며 다른 사람에게 힘주어 얘기하곤 한다. 성인이 되어 자식을 의도대로 키운다고 부단히 노력했는데 그래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잘못되거나 반성은 되어도 후회 같은 일들은 대체로 적었다고 말할 수 있다. 허나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는 대단히 어렵고 힘드는 사회생활이 되리라는 예상이 된다. 흔히들 대학까지 들어가게 되면 공부를 다 시킨 양 생각하거나 별 걱정이 없는 듯 마음을 안정하게 가지는 안이함에 빠질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회생활에 경험이 적은 저들이 온실 속에 자란 듯 저 모습으로, 너무나 혼탁하고 걱정스런 세상을 헤쳐나갈 것을 생각하니 부모로써 지금까지의 걱정과 노력과 힘들여 살아온 과정이나 별 다름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만다. 위의 세 가지 언급에서 행복이란 인생의 과정 속에서 자기가 정한 목표에 도달했을 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일련의 과정에서 얼마든지 있을 수 있고 목표에 도달했을 때는 오히려 일시적인 것이라고 보는 것이 더 맞을 것 같다. 또한 사회와 이웃이 변하고 나와 내 주위가 변해도 자기가 이와 같은 상황변화에 어떻게 대처하고 생각하느냐가 중요한 일이다. 나아가서 긍정적 사고와 부정적 사고, 어느 쪽으로 형성되었는가가 그 판단의 준거가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아름다운 추억과 행복은 자기 마음속에 있는 것이고, 억지로 잡으려 하거나 느끼려고 한다고 되는 것은 아닌것 같다. 의식하지 아니하고 성실하게, 오히려 당당하게 자기 인생을 살아가는 것이 아름다운 추억이고 행복이 아닐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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