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을 생각하며!

1999년 9월 15일에 썼던 글!

마징거제트 2009. 12. 1. 20:12

 

합리적 경쟁으로 다져진 친구

(1999년 9월 15일 개교기념일을 맞아서 쓰다)

 

대륜고등학교 학생부장 이 구 동

 

  지난 일들을 가끔씩 생각하게 되면 연상과 유추가 복합적인 반응을 일으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된다. 늘 좋은 생각을 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 결과가 잘 되지 않는 것은 그런 때문이 아닐까? 18년을 근무했고, 그간에 우리 학교를 거쳐간 제자들이 무려 만여 명이 넘는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다. 3년 전 어느 술자리에서 늘 대륜인임을 자처하고 자존심이 강한 유명 인사가 ꡒ선생님, 대륜에 몇 년을 근무하셨습니까?ꡓ란 질문을 던지자ꡒ15년을 근무했다ꡓ고 했다. 그러자 그 사람이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우리가 3년 내지 6년을 드나들며 공부하고는 대륜인이 되었다고 하는 것에 비하면 선생님들이야말로 ꡐ진정한 대륜인ꡑ이라고 강조했을 때 어깨가 무겁기도 했지만 으쓱해지기도 했다. 그렇다. 우리 선생님들은 진정한 대륜인을 길러 내는 일에 노심초사하시는 진정한 대륜인이다. 부임한 후 우리 대륜 교정을 거쳐간 수많은 제자들 중 생각나는 제자가 한둘이겠는가마는 어느 제자가 더 중하고 어느 제자가 덜 중함이 문제가 아니요, 모두가 소중한 우리의 제자들임을 전제한다.

 

 84년 봄 새싹과 더불어 1학년 5반 새 식구를 맞았다. 입학식을 마치고 교실로 안내하고 복도에 있던 학부모님들도 교실 안으로 들어오시게 했다. 그리고 학생들과 함께 서로 인사도 하고 학급 경영 방침이랑 학생들과의 약속도 하고 다짐도 하였다. 그 과정에서 몇몇 학부모님들은 아들을 처음 고교에 진학시키는 기쁨과 기대가 큰 만큼, 담임에 대한 기대도 컸으리라고 생각되었다. (기대를 늘 충족시켜 드리지 못한 것 같은 부족함으로 교단을 지켜 온 듯하다) 얘기를 마치고 잠시 쉬는 시간에 한 학부형께서 환한 얼굴로 인사를 하는 데 알고 보니 진호군의 어머니였다. ꡒ철부지 아들을 맡기고 갑니다ꡓ란 말씀이 아직까지 생생하다. 그때부터 알게 된 진호란 학생은 유난히 밝고 또렷했다. 중간쯤의 위치에 앉았기는하나 교실에서 그의 위치가 항상 넓어 보인 듯한 감을 주곤 했다. 몇 주가 지난 후 반장 선거를 하는데 유세 과정에서 아주 당당한 모습으로 작은 일이든 큰 일이든 성실을 다하겠다던 그 모습에 학생들은 그에게 몰표를 주고 합리적 권위를 인정해 주었다. 1년 동안 반장의 임무를 수행함에 있어 뭐가 그렇게 즐거운지 항상 흥얼거리면서 일을 처리하곤 했다. 언제나 긍정적인 사고방식으로 남을 대하고 자기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늘 감수하는 기질이 항상 돋보였으며, 일 처리 솜씨가 비온 뒤에 농부의 논가는 모습과 비슷하다고나 할까?

 

 1년이 지나고 새롭게 반이 편성되었는데 이상하게도 진호군은 다시 2학년 7반인 내 반에 소속되었다. 그리고 운명인지는 몰라도 진호군의 백부께는 내가 배웠고, 진호군은 내가 맡아 담임으로서의 책임감과 의무감에 더욱 어깨가 무거웠다. 그러나 난 참 든든하고 좋았다. 2학년이 되고 난 뒤 어느 날 진호는 창호라는 학생과 새로운 친구로 사귀게 되었다. 창호는 아주 분명하고 논리적이었으며 역시 밝은 학생이었다. 진호와 친해지면서 공부에 대한 내용은 물론 인생에 대한 이야기까지도 서로 논쟁을 자주 벌린듯 하였다. 어느 날 둘이서 논쟁이 시작되어 끝을 맺지 못하고 싸움 일보 직전까지 가서는 서로 히말라야시다나무 아래에서 2시간 동안 묵비권으로 버티기까지 했다고 한다.  그 후 둘은 서로 좋아하면서 합리적 경쟁을 다지고 우의를 돈독히 해 갔다. 나도 진호의 목표는 창호가 되도록 격려했고, 창호의 목표는 진호가 되도록 격려하곤 했다. 나아가 대구 시내의 학생들이 경쟁자가 되고 그 다음 목표는 우리 나라의 학생들이 되도록 했다.

 

 85년 수학여행! 학생들은 들뜨기 쉽고 선생님들은 출발에서부터 집에 돌아올 때까지 한 치도 소흘함이 없이 긴장으로 근무를 하게 된다. 자기 아들을 데리고 간 이상의 신경을 쓰고 배려를 하는 전통을 만들어 온 대륜 학교의 수학여행, 항간에 수학여행을 관광성으로 비방하는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에 의해 평가 절하되는 안타까움…. 우리 교육의 자주성으로 이겨 나가야 할 부분이다. 설악산에서 2박을 하고, 속리산에서 다시 1박을 더하게 되었는데 그 숙식 장소가 곡산여관이었다. 음식맛 좋기로 소문났고, 과연 그렇구나란 것을 확인하게 되어 오래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학생들에게 편의와 서비스를 최대한 베풀어 준 주인마님의 모습이 지금도 아스라히 떠오른다.

 

 여관방에 여장을 풀고 방 배정을 끝냈을 때 창호와 진호가 헐레벌떡 나에게 달려왔다. 이유인즉, 여관 방 벽을 주먹으로 때려 구멍을 낸 사건이 발생했다는 것이다. 장본인은 우리 학급에서 힘이 제일 센 영덕에서 온 H군이었다. 다른 학급이 방에 배정한 인원수보다 우리 학급의 배정 수가 많다는 것에 대한 불만이었다. 학생의 주장은 일리가 있었다. 그러나 주먹으로 벽에다 구멍을 내놓은 것은 잘못이란 점을 스스로 인정하게 설득시키고, 전체 아이들과 주인께도 사과를 하고 용서를 받았다. 방 배정 인원수에 대해서는 뚜렷한 해결 방법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임기응변적인 기지를 발휘하게 됐다. 힘센 춘식이를 비롯하여 5명이 연속적으로 선생님과 팔씨름을 하여 한 사람이라도 이기면 다른 여관방을 선생님 출장비로 얻어 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경기가 시작되었다. 힘으로써야 어떻게 이들을 당할 수 있었겠는가만은 기발한 방법을 가지고 있었기에 거뜬히 H군을 넘겨 버렸다. 내가 넘겼다고 생각되었지만 이미 이들에게는 진호와 창호의 선생님에대한 예우적 기지가 전달된 후인 것 같았다.  H군의 모습을 본 L군은 주눅이 든 상태에서 팔을 잡고 버티다가 어이없이 넘어가고 말았다. 그 순간,ꡐ와ꡑ하는 함성과 함께 모든 학생들이 자리에 꿇어앉았다.ꡐ이 방에서 자겠다ꡑ는 약속과, ꡐ용서를 구한다ꡑ는 표현이었다. 이 사태는 창호와 진호의 기지가 만들어 낸 두 쪽 모두의 승리로 기록된 잊지 못할 추억이었으며, 나에겐ꡐ마징거 Zꡑ란 별명이 붙었고 그 여행이 끝날 때까지 버스 안은ꡐ마징거 Zꡑ노래가 끊이지 않았다.

 

 14년이 지난 오늘에도 그 일을 떠올려 보면 가끔 웃음이 나오고 영화의 한 장면처럼 뇌리를 스친다. 학교에 돌아온 진호와 창호는 보이지 않는 열띤 경쟁을 하여 성적에서 시소를 보이기 시작하더니 전교에서도 정상을 서로가 넘보는 실력을 갖춰 가고 있었다. 3학년이 되어서는 가속도가 붙은 실력으로 진호는 의사인 아버지의 뜻과 의기 투합하여 S대 의예과에 거뜬히 합격하여 샛별의 빛을 발하기 위해 오늘도 열심히 연구와 수련에 매진하고 있으며, 창호군 또한 S대 물리학과에 보란듯이 합격하여 한국의 샛별과 같은 물리학자가 되려고 박사과정에서 불철주야 노력하고 있으니 어찌 가슴 뿌듯하지 않겠는가? 진호를 따라가려고 절에까지 가서 공부한 비밀을 너무 일찍 공개하여 진호도 한번 절 구경하도록 자극을 주었다고 하니, 이 두 친구의 경쟁이야말로 Win-Win전술에 의한 상호 이득이 아닐까? 이것이야말로 더불어 오늘을 사는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힘, 즉 시너지(synergy)이다. 우리 조상들이 슬기로 전해 준ꡐ꿩 먹고 알 먹기ꡑꡐ누이 좋고 매부 좋고ꡑꡐ배  먹고 이 닦고ꡑꡐ도랑 치고 가재 잡고ꡑꡐ등 뜨시고 배 부르고ꡑ호왈 일거양득(一擧兩得)이 아니던가?

 

 이처럼 학생들의 일상 생활에서 우리는 진리를 터득하게 되고, 민주적인 질서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 우리가 의도적으로 교실에서 가르치는 것만이 학습되는 것이 아니라 학생들 자신들의 생활 속에서도 무의도적인 교육의 효과가 엄청나게 길러지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하고 한번 더 학생들의 생활과 생각 속으로 뛰어들어 볼 일이다. 어쨌든 합리적인 경쟁을 멋지게 보여준 진호군과  창호군은 후배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줄 선배가 될 것임에 틀림없고, 앞날이 촉망되는 대륜인이 될 것을 기대하면서, 가까운 날 또 다른 후배들이 이 길을 갈 것을 생각하니 더 한층 오늘의 고됨을 잊게 해주는 청량제가 되는 것 같다.

 

* Ps : 이 글을 여기에 지금 올리는 것은 홈페이지 회사가 도산하는 바람에 재 등재했기 때문임을 밝혀둡니다.